도서관에서 발견한 멋진 명시집이에요. 책 한 권에 시 한 편....
시도 그림도 너무 딱 들어맞아서 어찌나 끌리던지....
이 시리즈의 시집을 주루룩 훑고 있는 중입니다.
로렐라이를 한 권 빼서 줬더니 데니스왈.... 저번에 본 거에요.
안 찾아줬는데도 알아서 봤구나 ㅋㅋ 혼자 기뻐한 엄마입니다.
일반 동시와 다른 서사시지만... 꼭 그냥 책 읽듯이 한 장 한 장이 수울 수울 잘 넘어가서
읽다보면 어... 다 봤네.... 라는 생각이 든답니다. ^^
일단 제목부터... 마법사의 제자라고 하니 안 끌릴 수가 없지요.
제자의 익살스런 표현이 정말 볼 만 합니다.
늘 그렇듯 제자들은 뭔가 모자란 구석이 있기 마련이에요.
마법사의 표정.... 포스가 느껴지시나요?
저자 및 역자 소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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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파의 대표자이자 독일의 시인 겸 작가이다. 1749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에서 왕실 추밀원 고문인 아버지와 시장의 딸이었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아버지의 방침에 따라 엄격한 교육을 받고 자랐다. 라이프치히 대학에 입학하여 법률을 공부하다가 병으로 일시 귀향했다가 다시 스트라스부르크 대학에서 학업을 계속하여 법학사가 되었다. 1770년 독일 질풍노도 운동의 실질적 선도자인 고트프리트 헤르더를 만나 독일 민속과 정신에 대한 깨우침을 얻었으며, 제젠하임이란 마을에서 목사의 딸 프리데리케 브리온과 사랑에 빠지며 감미로운 서정시들을 많이 썼다. 1771년 프랑크푸르트로 돌아와 변호사로 개업했지만 업무보다는 창작에 몰두하여 그해 질풍노도 시기의 대표적 희곡 『괴츠 폰 베를리힝겐』의 초고를 쓰고, 말년에 완성된 그의 역작 『파우스트』를 비롯해 여러 작품을 시작하였다. 1774년 발표한 그의 첫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발표되자마자 대단한 선풍을 불러일으켰으며, '슈투름 운트 드랑'(질풍노도시대, 문예의 혁명 운동)의 대표작으로서 전 독일 뿐만 아니라 전 유럽에 알려졌다. 1775년 아우구스트 공의 초청으로 그의 교육 겸 사담역으로 바이마르에 갔으며, 그 후 재상의 지위에까지 올랐다. 한편 그는 슈타인 부인과의 사랑과 1년 반의 이탈리아 여행을 통한 고대 및 르네상스 미술을 접하게 되었는데, 그로 하여금 쉬투름 운트 드랑적인 어두운 정열에서 벗어나 고전주의 예술 확립으로 향하게 했다. 1974년 무렵, 실러와 친교하게 되었고, 이들의 우정은 실러 사망 시까지 계속되었다. 그들은 서로 격려하면서 걸작품들을 세상에 많이 내어 놓았으며, 짧은 풍자적 비판시 『크세니엔』을 쓰기도 했다. 그 후 1773년 집필을 시작해 1831년 완성한 생애의 대작이자 독일문학의 최고 걸작으로 일컬어지는 『파우스트』외에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헤르만과 도로테아』『이탈리아 기행』『시와 진실』등의 작품을 통해 독일 최대의 시인이자 세계문학의 한 거봉이 되었으며, 1832년 찬란한 생애를 마쳤다.
고전파의 대표자이자 독일의 시인 겸 작가이다. 1749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에서 왕실 추밀원 고문인 아버지와 시장의 딸이었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아버지의 방침에 따라 엄격한 교육을 받고 자랐다. 라이프치히 대학에 입학하여 법률을 공부하다가 병으로 일시 귀향했다가 다시 스트라스부르크 대학에서 학업을 계속하여 법학사가 되었다. 1770년 독일 질풍노도 운동의 실질적 선도자인 고트프리트 헤르더를 만나 독일 민속과 정신에 대한 깨우침을 얻었으며, 제젠하임이란 마을에서 목사의 딸 프리데리케 브리온과 사랑에 빠지며 감미로운 서정시들을 많이 썼다. 1771년 프랑크푸르트로 돌아와 변호사로 개업했지만 업무보다는 창작에 몰두하여 그해 질풍노도 시기의 대표적 희곡 『괴츠 폰 베를리힝겐』의 초고를 쓰고, 말년에 완성된 그의 역작 『파우스트』를 비롯해 여러 작품을 시작하였다. 1774년 발표한 그의 첫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발표되자마자 대단한 선풍을 불러일으켰으며, '슈투름 운트 드랑'(질풍노도시대, 문예의 혁명 운동)의 대표작으로서 전 독일 뿐만 아니라 전 유럽에 알려졌다. 1775년 아우구스트 공의 초청으로 그의 교육 겸 사담역으로 바이마르에 갔으며, 그 후 재상의 지위에까지 올랐다. 한편 그는 슈타인 부인과의 사랑과 1년 반의 이탈리아 여행을 통한 고대 및 르네상스 미술을 접하게 되었는데, 그로 하여금 쉬투름 운트 드랑적인 어두운 정열에서 벗어나 고전주의 예술 확립으로 향하게 했다. 1974년 무렵, 실러와 친교하게 되었고, 이들의 우정은 실러 사망 시까지 계속되었다. 그들은 서로 격려하면서 걸작품들을 세상에 많이 내어 놓았으며, 짧은 풍자적 비판시 『크세니엔』을 쓰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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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독일에서 태어나 함부르크 미술대학에서 디자인을 공부했다. 1976년부터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1982년과 1993년 사이에는 삽화와 도안에 대한 많은 강의를 하기도 했다.『방귀쟁이 개 몹스의 가족 일기』를 비롯하여 『사고뭉치 동물 대모험』 등 어린이 책에 그린 삽화가 많은 어린이와 어른들에게 사랑을 받아 작가로는 드물게 팬클럽까지 가지고 있다. 현재 함부르크에서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다.
1954년 독일에서 태어나 함부르크 미술대학에서 디자인을 공부했다. 1976년부터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1982년과 1993년 사이에는 삽화와 도안에 대한 많은 강의를 하기도 했다.『방귀쟁이 개 몹스의 가족 일기』를 비롯하여 『사고뭉치 동물 대모험』 등 어린이 책에 그린 삽화가 많은 어린이와 어른들에게 사랑을 받아 작가로는 드물게 팬클럽까지 가지고 있다. 현재 함부르크에서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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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 이루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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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우리말로 옮긴 이루리 선생님의 별명은 살찐 어린 왕자랍니다. 어린이와 동화책을 사랑하는 뚱뚱한 아저씨거든요. 선생님은 고려대학교 사회교육원에서 글쓰기 선생님들을 가르치면서 동화와 어린이의 세계에 퐁당 빠지고 말았어요. 중앙문화센터에서는 어린이들에게 직접 책읽기와 글쓰기를 가르치기도 했답니다. 지금은 어린이를 위해 좋은 글을 쓰고 좋은 책을 번역하는 일을 하고 있지요. 이루리 선생님이 번역한 책으로는 <지구를 구한 꿈틀이사우루스> <천둥아, 내 외침을 들어라>와 <마법에 걸린 모나리자> <장난꾸러기 사계절 요정> <예절은 정말 쉽고 재밌어요> <레아의 엉망진창 방 정리정돈 하기> <아이가 어떻게 생기는지 너 아니?> <우리 가족의 거짓말 하는 날!> 등이 있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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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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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속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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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고 늙은 마법사 선생님 드디어 외출을 나가셨네! 그럼 이제 선생님의 정령들을 나의 뜻에도 따르게 해야지. 선생님의 말과 선생님의 행동은 물론 그 방법도 눈여겨보아 두었지. 강한 정신력으로 나도 기적을 행하리라.
솟구쳐라, 솟구쳐라. 굽이굽이 물이 흘러 가득히 흘러 넘쳐 목욕통으로 쏟아지도록!
중략....
멈춰라! 멈춰라! 너의 재능은 우리 모두 벌써 다 보았으니까! 앗! 이를 어쩌지? 아이고! 아이고! 주문을 잊어 버렸네!
아! 주문, 주문을 들어야 저 빗자루가 이전으로 돌아갈 텐데! 이를 어째, 저것이 내달려서 재빨리 물을 나르는구나! 다시 낡은 빗자루가 되었으면 좋으련만! 계속해서 물을 빨리도 퍼오는구나. 아! 수백 줄기 강물이 내게로 쏟아져 들어오네!
후략...--- 본문 중에서 | |
서사시를 접하게 해 주고 싶은 맘이라면 정말 강추하는 책입니다. ^^ |